나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고 하느님과 가까이 하고자 했다.
어린 나이에 자주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면서 교회에도 나가고 성당에 나갔던 기억도 있다.
약을 먹고 치료를 하면서 어려움을 개척해 나가는 진통의 상황에 놓인 나의 삶에있어
하나의 어려움이 해결되면 다른 두개의 어려움이 발생하곤 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이 기록을 통하여 하느님에 대해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 지 몰랐다.
시편을 볼 때는 눈물을 흘리던 기억은 난다.
그러다 집 앞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게 된다.
그나마 센터에서의 화를 도서관에서 풀 수 있다는게 다행 중의 다행이다.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빋는 건 피할 수 없는 내 생의 멍에인가 보다.
센터라는 보호망 속에서도 무수히 스트레스가 생긴다.
남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것 처럼 보여도 당사자 역시 심한 마음의 압박을 받는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듯이 나를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 나를 괴롭게 만드는 회원이나 선생도 있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칭찬해 주려고 하면 내 쪽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돌을 던질 만한 거리에 살아도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명언이 생각난다.
선생이든 회원이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벗이라도 언제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나는 살면서 무수히 스트레스를 받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주고
내가 이렇게 힘든데 저 사람은 얼마나 더 힘들까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화해야 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 전도인을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고 성경연구를 하면서 목소리 찾는 작업은 어떻게 되나 걱정도 많았다.
현재는 참 히느님을 알아가는데 힘쓰고 형제자매와 따뜻한 교제를 나누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성경을 읽으며 새 인간성 즉 온유한 마음, 평화, 참을성, 사랑의 마음을 기르는데 힘쓰고 있다.
여호와의 표준에 맞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불완전하지만 예수께서 나타내신 본을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
그 중 하나가 공동체 삶을 살면서 네 이웃을 사랑하란 계명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교통사고 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마냥 즐거웠다. 그러나 사고의 휴유증이 심해지면서 중학교 입학이후로 내 삶에 그늘이 점차로 짙어졌다. 공부에는 집중할수가 없었고, 떨어진 성적으로인한 자괴감, 수업시간의 긴장, 점점 외툴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던 것 같다 더욱 그러하다.
집에 오면 고음으로 올라가는 테너들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내용도 모르는 영화 속에 계속 빠졌다.
여름인데도 춥고 옷을 두껍게 입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성악과로 들어가기 위해 노래연습을 하는데 소리를 너무질러 몸에 열도 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병원을 퇴원하고 집에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한다.
병증에 대한 신호가 온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의 삶은 도서관을 이용하다 센터를 생활로 옮겨오게 되었다.
어찌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랴!
작업시간 선생들의 잔소리와 이제 갓 20살이 넘은 여선생들과 실습생과 함께 하면서 또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과연 평화와 안전을 누리기 위해선 폭풍과 태풍도 받아드려야 한다는 명언이 나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린다.
결국 십수년에 걸쳐 여러 센터를 전전하게되었다.센터의 분위기는 각양각색이었는데 완전 시장바닥이던 한 센터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참고 깉이 일을 하고 어울리려 노력하였다.
바리스타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일을 하면서 또 참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의 연속이지만, 글을 게시하고, 글을 쓰는데 주력하면서 나만의 돌파구를 찾고있다.